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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추억할 장소가 있다는 건 (feat. 스승의 날)

스승의 날, 오랜 인연을 이어온 선생님과 서로 안부를 전했다.

1년에 딱 한번 5월 15일마다 연락하고 찾아뵙는다.

어린 시절의 한 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인연인데, 바로 '피아노 선생님'이다.

 

 

 

 

 

 

 

내 취미 중 하나는 '피아노 연주'이다.

전공자는 아니지만 자유롭게 연주할 정도의 실력은 가지고 있다.

나이가 많지는 않으나 반평생 이상으로 피아노는 내 곁에 있었다.

7살에 학원에 가서 처음으로 피아노를 접했고, 그 당시 땅콩만 한 어린이를 받아주셨던 분이 선생님이다.

 

 

 

 

요즘 피아노 선생님들은 젊은 분들이 많더라.

몇 년 전 '위드 피아노'라는 곳을 잠시 다녔었는데, 외관상 2~30대의 젊은 선생님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내게 '피아노 선생님'은 60대의 할머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보았던 선생님의 모습이 그랬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부모님을 넘어선 어른이었다.

 

 

 

 

피아노 학원은 주택들 사이에 덩그러니 위치해 있다. 

왜냐하면 선생님의 오래된 주택 한 구석이 피아노 학원으로 꾸며졌기 때문이다.

줄지어 있는 골목길 중 첫 번째 골목 입구로 들어가야 하는데, 골목길은 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너비이다.

양쪽으로 붉은 벽돌의 주택들이 서있고, 반절 들어가면 푸른 기와의 오래된 집이 있다.

대문은 오랜 세월이 보이는 청빛의 두꺼운 철문이다. 

벨을 누르면 '탕'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리고, 계단 한두 개를 올라 학원으로 들어간다.

 

 

 

 

학원은 일반적으로 상상되는 깔끔하고 현대적인 학원이 아니라, 오래된 일반 가정집의 모습이다.

피아노 연습실로 사용되는 방 3개가 있었는데, 지상방 2개와 지하방 1개였다.

각 방에는 피아노 1대와 난방기 또는 선풍기 1대씩만 있었는데, LPG 가스난로와 옛날 모델의 선풍기였다.

더운 여름날에는 시원한 지하방이 좋았고, 추운 겨울날에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지상 방이 좋았다.

먼저 도착한 사람이 방을 고를 수 있어서, 사람이 없는 시간을 잘 찾아 방문해야했다.

 

 

 

가끔은 이미 방 3개 모두가 꽉 차있기도 했다.

당시에는 광고도 없어 입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시기였고, 

애당초 소소하게 동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학원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 치고는 옆동네 아이들도 찾아왔고, 수강생 중에는 어른들도 종종 있었다.

피아노를 비롯한 예체능 학원이 유행하던 시기였지만, 선생님도 꽤 입소문이 타던 분이었나 싶다.

 

 

 

 

여하튼, 방이 모두 가득 차 바로 수업을 들을 수 없을 때에는 학원과 붙어있는 선생님 집에서 놀면서 기다리곤 했다.

피아노 첫 번째 방은 선생님 집 거실과 이어져있었다.

거실에는 큰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곳에 앉아 만화책을 보거나 숙제를 하고는 했다.

공주와 개구리 만화책을 봤던 게 기억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정말 우리를 위해 가져다 둔 책이었다.

한참 어른일 선생님이 보실 책은 아니니까.

만화책도 종종 바뀌었던 거 같은데 선생님은 어떤 책을 가져다 놓을지 고민하셨었을까?

 

 

 

 

때로는 같이 학원을 다니던 동네 친구와 함께 '다이아몬드 게임'을 했었다.

선생님의 가족 분이 가지고 있던 보드게임인데, 우리에게 처음으로 이 게임을 알려주셨다.

처음 이 게임을 알게 된 후 어린이들 사이에서 한때 유행처럼 번져서 만날 때마다 이 게임을 하고는 했다.

어떤 날은 선생님이 주시는 간식이나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특히 백설기에 김치를 얹어 먹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데, 떡과 김치를 함께 먹는다는 게 내 상식 밖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달달한 떡과 매콤한 김치가 잘 어울려서 충격적이었다.

 

 

 

 

'피아노 학원'은 배움의 의미에서는 학원이었지만, 그 이상이었다.

친구를 만나고, 선생님을 만나고, 맛있는 것도 먹고,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고.

이 장소를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추억은 피아노뿐이 아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성장하는 모든 시간에 학원은 한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가 일반 학원을 다녔어도 이렇게 좋아했을까? 이렇게 오래 다녔을까?

 

 

 

 

'피아노 선생님'은 피아노 배우던 시간에는 무섭기도 하고 잔소리도 많은 선생님이었다.

아니, 피아노 시간이 끝나도 잔소리는 많으셨던 거 같다.

그렇지만 이것도 애정이 없으면 나오지도 않는다는 걸 다 크고 나니 알겠더라.

무엇 하나 더 가르쳐주고 싶어서, 무엇 하나 더 먹이고 싶어서.

한창 사준 기와 함께 피아노에 대한 권태기가 왔을 때는 학원을 밥 먹듯이 빼먹고 그만두려고 했다.

그런 나를 잡고 어떻게든 설득해서 가르치려 하셨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단순히 학생을 잡기 위함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내 어린 시절에는 집이 재정적으로 여유롭지 못했고, 매 달마다 나가는 피아노 학원비도 부담이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어느 순간 학원비를 받지 않으셨다고 성인이 된 후에 어머니에게 전해 들었다.

어른들만의 사정이었다.

 

 

 

그렇게 한번 붙잡혀서 계속 피아노를 배웠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다시 권태기가 왔고, 학업도 겹쳐 진짜로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는 추억 어린 장소를 끊어 버리는 게 아쉬우면서도, 매일마다 가는 학원을 안 가도 된다는 후련한 마음도 들었다.

하기 싫은 마음이 가득한데, 정기적으로 가서 연습해야 한다는 게 참 싫었었다.

그리고 동시에 선생님과의 오랜 인연도 잠시 끊겼었다. 

 

 

 

그리고 몇 년 뒤, 함께 피아노를 배웠던 동생을 통해 우연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스승의 날에 찾아뵙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뵌 선생님에게서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내가 알던 호랑이 선생님의 모습은 옅어졌고, 바쁜 삶을 마무리하고 쉬어가는 어른이 있었다.

이렇게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은 많은 감상을 남긴다.

속절없이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 시간 앞에 약해져 가는 우리에 대한 슬픔, 

동시에 떠오르는 추억에 대한 아련함, 지금 여기서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

모든 걸 차치하고 오랜만의 만남에서 오는 반가움과 즐거움.

 

 

 

오랜만에 찾아뵈면 선생님은 정말로 반가워하시면서 얼굴에 웃음꽃이 피신다.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고, 옛날의 추억거리도 이야기하고.

그렇게 한두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년을 기약하며 다시 헤어진다.

내년 다시 만날 때까지 몸 건강하시라 인사한다.

이미 몸 곳곳이 안 좋으신 선생님이시라 헤어질 때마다 하는 이 기도가 부디 효과가 있기를 빈다.

 

 

 

 

골목길은 새로 들어선 건물들로 조금씩 바뀌었고, 학원 내부의 모습, 선생님, 그리고 나 또한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아무리 바뀌었어도 그 골목 입구로 들어가다 보면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사람에게는 강렬한 추억으로 남는 어떤 기억이 있는데, 그 기억은 장소, 사람, 물건과 연결되어 더 뚜렷하게 남는다.

내게는 '피아노 학원'이 그런 기억이다.

한참 현실이 바쁠 때는 잊고 지내다가도, 스승의 날이 오고 그 학원을 들리면 

이 같은 추억이 저 기억 밑바닥에서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 내가 또 얼마나 큰 사랑을 받으며 컸는지 상기하며 다시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앞으로 살아갈 긴 시간 동안 이같은 스승을 또 만날 수 있길 바란다.

동시에 우리 선생님이 건강히 올해도 나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