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최근 정주행 하는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제가 닥터후 팬이거든요.
닥터후는 1963년에 처음 상영한 영국의 대표 장수 드라마이다.
올해가 2021년이니 58주년인 것 같다.
처음 닥터후가 방영할 때는 흑백 TV 였다고 하니 참 오래된 드라마다.
물론 63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방영한 건 아니다.
90년부터 방영이 중단되었다가 2005년에 뉴 시즌으로 재시작했는데,
이 뉴시즌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닥터후 시리즈'이다.
찐팬들은 구시즌까지 찾아본다는데, 나는 뉴 시즌부터 드라마를 보았다.
뉴 시즌도 크게 둘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시즌 1~7까지의 9대 닥터(에클닥), 10대 닥터(테닥), 11대 닥터(맷닥)
두 번째, 시즌 8~12까지의 12대 닥터(카닥), 13대 닥터(휘닥)
나는 이 중 첫 번째 시즌들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처음 닥터후를 접한 것이 시즌 2였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시절 TV에서 '시즌 2 - 에피소드 1 New earth'로 닥터후를 처음 보았다.
닥터가 고양이 수녀들과 함께 좀비같은 모습의 병자들에게서 도망치는데,
어릴 적에는 이게 너무 무서워서 이불 속에서 숨어서 봤었다.
이 기억이 생생해서 언젠가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문제는 어릴 적 티비 채널을 돌리다 본 것이라 드라마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2018년, 그때 그 드라마가 '닥터후'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회 초년생으로 회사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던 시절.
이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한창 우후죽순 생기던 VOD 서비스들을 둘러봤었다.
옥수수, 티빙, 왓차, 넷플릭스...
그러다가 익숙한 배우 테넌트의 썸네일이 보였고, 그게 처음 닥터후를 보게 된 날이었다.
다시 보게 된 닥터후는 기억처럼 재밌었고, 시즌 1부터 쭉 정주행을 하기 시작했다.
매일마다 퇴근 후 저녁 먹으면서 한 편, 운동하면서 한 편, 자기 전에 한 편.
시즌 1~7까지 약 90화가 넘는 걸 한 번에 다 봤었다.
타임머신 타디스를 타고 다니는 닥터와 컴패니언.
별별 종류의 외계인들과 우후죽순 터지는 사건사고.
앞 시즌은 CG가 허접하다 못해 인형놀이처럼 보이는데도, 그게 또 매력으로 보였다.
잔인하지는 않으면서도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컨셉과 판타지 요소들은 내 취향을 저격했다.
또한 시즌이 많은 것도 장점 중 하나였는데, 봐도봐도 끝나지 않는 스토리와 떡밥들은 몰입하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https://twitter.com/noiac/status/1240275220516073472?s=20
* 메이저인지 마이너인지 구분 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공식 자료만으로도 주워볼 떡밥이 한가득이다.
이렇게 시즌 7까지 몰아서 보고, 시즌 8로 넘어가면서 잠시 정주행을 중단했다.
오랜 기간 보면서 지치기도 했고, 12대 닥터의 캐릭터가 취향에 맞지 않아서이다.
나에게 닥터는 '무엇이든지 알고, 위기가 있어도 바로바로 극복하고, 리더십이 있는' 인물였다.
말 그대로 '만화 속 주인공' 같은 인물이었고, 이 인물이 사건사고를 속 시원하게 해결하는 데 있어서 즐거움을 느꼈다.
이런 이유에서 10대 닥터(테닥)을 제일 좋아했고, 11대 닥터(맷닥)만 해도 재밌지만 때때로 긴가민가 하는 부분이 있었다.
(맷닥은 타임 패러독스 스토리가 복잡해서 이해를 못해 그랬던 거 같다.)
그런데 12대 닥터(카닥)은 이런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다.
조금은 괴짜같고, 고집불통이고, 문제를 해결하기는 하지만 언제나 컴패니언(클라라)이 없으면 안 되는 인물.
나에게 닥터는 그 혼자만으로 완벽한 인물이었는데, 12대 닥터는 이런 내 이상과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18년도에는 정주행을 하다 결국 하차하고 말았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2021년이 되었다.
지금 구독 중인 왓차에 '닥터후'가 있는 걸 알고 있었고, 오랜만에 갑자기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닥터후의 시즌들을 훑어보는데, 이전에 보다 말았던 시즌 8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즌 8부터 정주행을 하기 시작했다.
재미없으면 자택 근무 때 BGM으로 틀어놔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번에는 재밌었다.
몇 년 사이에 나는 바뀌기도 했다.
가상 속 캐릭터라도 능력있고 성격 좋은 완벽한 인물에 대한 이상을 내려놓았다.
속 시원하고 통쾌한 스토리와 이에 맞는 주인공이 있어야 재미를 느끼고 그 콘텐츠를 소비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은 인물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혼자서 해결 못하고 언제나 컴패니언(클라라)에게서 도움과 힌트를 받아야 하고,
컴패니언(클라라)에게 항상 휩쓸리는 닥터가 참 답답해 보였는데.
지금은 다소 애정결핍처럼 보이는 이런 모습도 '수천 년 살아온 과거 때문에 그렇구나' 하고 그냥 받아들여진다.
재미없다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성격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관계들과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18년도에는 답답해하며 속 터지게 보던 장면이 지금은 각 캐릭터의 상황이 이해가 되면서 수긍하고 있다.
나 스스로 이런 차이를 느끼는 건 꽤나 독특한 경험이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우리의 감각은 이를 잘 캐치하지 못한다.
하루, 일주일, 한 달 정도는 시간에 따른 변화를 캐치하기 어려운데,
이렇게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몇 년을 시간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것이 바뀌어 있다.
짧다면 짧은 3년의 시간 동안 외적, 내적으로 다양한 경험들이 쌓이면서 나는 또 바뀌었다.
변화가 언제나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일 수 있고, 더 안 좋은 방향일 수도 있다.
이 방향은 매일매일의 선택으로부터 시작된 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번에 느낀 변화는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이해와 수용의 폭이 넓어졌다는 측면에서
스스로 더 나은 방향이었다고 생각한다.
여러 생각이 더해졌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닥터후 추천한다.
안 본 사람이 있으면 꼭 보길 바란다!
각 닥터 별로 매력이 제각각이니 원하는 캐릭터의 시즌부터 보면 된다.
참고로 한 닥터의 시즌을 모두 보고 나면 거기에 몰입되어서,
다른 닥터로 넘어가는 것이 쉽지 않으니 처음을 잘 선택하면 좋을 것 같다.
첫 닥터가 최애가 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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