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lly!
어젯밤 손열음 리사이틀에 다녀왔다.
부푼 기대를 안고 입장한 공연은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손열음 피아니스트는 무대에서 빛났고, 연주되는 곡은 하나하나가 아름다웠다.
오늘은 공연 후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공연 전 입장
2호선 서초역에서 내려, 서초 11번 버스를 타고 예술의 전당에 도착했다.
정말 오랜만에 방문한 예술의 전당인데 공연시간이 다되어 구경도 못하고 지나갔다.
코로나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공연장 입장 전 전자명부 확인증을 발급해야 한다.
건물 곳곳에 QR 코드가 붙어있어서,
핸드폰 카메라로 QR 코드를 찍으면 해당 페이지로 넘어가 정보를 기재할 수 있다.
이 전자명부 확인증이 있어야 공연장에 입장할 수 있다.
콘서트홀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티켓 발급은 바로 받을 수 있었는데, 포토존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공연 방문 인증을 위한 사람들의 노력....
포토존 멋지게 마련되어 있으니 사람들의 마음은 이해가 됐다.
나는 티켓과 함께 한 장 촬영했다.
내 충동구매의 R석.... 충동구매지만 올해의 소비 Top 5에 들어간다...
공연장에서는 프로그램, 손열음 친필사인 CD를 판매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은 3천원 정도였는데, 나는 현금 없어서 구매는 못했다.
그렇지만 이미 프로그램들을 공부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물론 곡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프로그램을 구매하는 걸 추천한다.
9/30 프로그램 순서
- 카푸스틴 문 레인보우
- 셰드린 두 개의 폴리포닉 소품들
- 볼콤 우아한 유령
- 볼콤 폴터가이스트
- 손일훈 변주곡 아닌데?
- 히르츠 오즈의 마법사 환상곡
[인터미션]
- 카푸스틴 소나티나
- 카푸스틴 소나타 2번 (1~4악장)
- 카푸스틴 변주곡
공연 후기
공연이 시작하고 손열음 피아니스트가 공연장으로 들어왔다.
검은색 나시 점프슈트, 검은색 힐, 턱선까지 오는 단발머리.
공연과는 관련 없지만, 이번 무대의 착장은 끝내주게 멋있었다.
당당하게 무대 위로 올라오는데 워킹에서부터 자신감 뿜 뿜 하는 모습이었다.
무대 위에서 공연 전 인사를 하는데 이때가 기대감 최고치였다.
기다린 그 날이 왔어!
1. 카푸스틴 - 문 레인보우
공연장 온게 워낙 오랜만이라서, 공연장 특유 피아노의 소리에 먼저 홀렸다.
음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역시 음원보다 공연 실황으로 들으니 멜로디가 더 잘 들렸다.
첫 곡인만큼 정신없이 멜로디 쫓아서 듣다보니 곡이 끝나 있었다.
2. 셰드린 - 두 개의 폴리포닉 소품들
역시 내가 생각하기에 이 곡은 너무 귀엽다.
귀여운 친구들이 종종 거리며 장난치는 모습이 상상된다.
무대 앞 4열의 장점은 연주자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떻게 페달을 밟는지 상세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곡은 페달이 큰 역할을 했던 거 같다.
발이 바쁘게 움직이며 페달을 밟는 모습이 보였다.
이 곡의 매력포인트라 할 수 있는 도입부에서 소프트 페달을 사용한 것 같았다.
소리가 좀 더 부드럽고 동글하게 울렸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들었다.
3. 볼콤 - 우아한 유령
이 곡은 음의 이어짐이 관건이었다.
서스테인 페달을 떼는 순간 이어지던 소리의 단절이 생겼고, 여기에서 리듬감이 느껴졌다.
악보로 표현하면 줄 이음표가 여럿 있지 않았을까?
음원으로 들었던 다른 연주들에 비해 비교적 느릿하게 연주되었다.
약간 힘을 빼고 연주했는데 오히려 조용하면서도 고즈넉한 느낌이었다.
이 곡을 이렇게 쉽게 연주하다니, 역시 멋져...
4. 볼콤 - 폴터가이스트
원래도 신비한 분위기 때문에 관심이 가던 곡이었는데, 실제로 들으니까 더 좋다.
최애곡 리스트에 들어감.
실제로 들으니 좀 더 장난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연주자의 해석 때문인가?
이 곡의 하이라이트 부분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었다.
음원으로 들었을 때는 귀신들이 빠르게 달리다가 영화처럼 서로 부딪히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실황으로 들으니 귀신들끼리 장난치며 얼음땡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연주자 본인도 그 순간은 피아노에서 손을 떼며 얼음이 되었는데, 웃는 얼굴이 본인이 장난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이라이트 구간의 첫 번째 '쾅' 부분은 팔로 음을 눌러 연주한다는 사실을 공연을 보며 처음 알게 되었다.
5. 손일훈 - 변주곡 아닌데?
'이게 변주곡이 아니라고?'
곡을 들은 후의 첫 감상이었다.
프로그램이 변경되면서 추가된 곡이었다.
곡이 추가되었을 때, 나는 다른 곡들처럼 연주를 찾아 듣지 않았다.
별 이유는 없고 그냥 리사이틀에서 처음 듣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내 결정에 후회는 없었다.
곡에 대한 첫인상이 멋지게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음에 제시된 멜로디와 리듬인데 정말 다양하게 모습으로 바뀌어 연주되었다.
변주곡처럼 느껴지는데, 변주곡의 구성요소를 못 채웠나?
제목에서는 변주곡이 아니라는데...
나중에 곡에 대해 다시 한번 검색해봐야겠다.
사람들에게 인상 깊은 곡이 무엇이었냐 묻는다면, 이 곡이 후보군에 꼭 들어갈 것이라 생각한다.
연주 중반에 독특한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주를 하던 중, 갑자기 연주자가 박수를 쳤다.
첫 번째에는 순간 무엇인지 상황 파악하느라 바빴고,
두 번째에는 연주의 일환이라는 걸 파악했고,
세 번째부터는 연주자가 관객들의 박수를 유도한 덕분에 함께 박수를 쳤다.
이후로 몇 번 박수를 쳤는데, 후반에는 연주자 본인이 박수를 치지 않으니까
관객들이 손뼉 치다 잘못 친 줄 알고 흠칫거리기도 했다. (내가 그랬다)
여하튼 관객과 상호작용 있는 연주라니, 손열음 피아니스트가 왜 이 곡을 추가했는지 알 것만도 같았다.
또 하나의 이벤트는 '손일훈' 작곡가가 실제로 공연장에 와있었다.
중간에 손열음 피아니스트가 관객석을 보고 놀라는 모습을 보였고,
뒤를 돌아보니 남성 한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처음에는 누구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듣고보니 실제 곡의 작곡가인걸 보고 신기했다.
6. 히르츠 - 오즈의 마법사 환상곡
최애곡 리스트에 오른 또 하나의 곡.
실제로 들으니 곡 속에 숨겨진 멜로디가 더 잘 들렸다.
음원으로 들을 때는 첫 도입부에 멜로디가 있는 줄 몰랐는데, 공연에서 들으니 '이 노래였구나' 싶었다.
오즈의 마법사 영화를 다 본 적이 없는데, 멜로디들은 어떻게 죄다 익숙한지 신기하다.
하나의 동화가 펼쳐지는 곡이었다.
기승전결이 있고, 전개마다 나오는 멜로디들은 '오즈의 마법사'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오즈의 마법사 곡을 듣고 피아노곡으로 편곡했다 들었는데, 이쯤 되면 찐 광기가 틀림없다.
물론 덕분에 멋진 곡이 세상에 나왔으니 감사하다.
<인터미션>
인터미션에는 1부에서 들었던 곡들의 여운을 즐기며, 감상을 기록하다 보니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2부 시작을 위해 손열음 피아니스트가 다시 나왔는데, 이때 착장이 흰색 점프슈트로 바뀌었다.
오.... 또 다른 멋짐이 폭발이었다.
7. 카푸스틴 - 소나티나
카푸스틴 곡 중 제일 익숙한 곡.
초반에 경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오는데, 들리는 음과 박력은 내가 아는 것과 천지 차이였다.
실황 공연 최고다.
모든 곡의 감동이 배가 된다.
8. 카푸스틴 - 소나타 2번 (1~4악장)
1~4악장까지 연주가 이어졌는데, 연주시간 동안 입 벌리고 봤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또 연주 모습을 들여다보느라 목이 계속 앞으로 빠졌는데,
중간에 거북목이 뻐근해서 의식적으로 목을 뒤로 빼는 해프닝도 있었다.
곡이 긴 만큼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미리 공부해간 덕분에 각 악장별로 특징도 잘 보였다.
1악장에서 약간 미스터치가 있었던 거 같은데, 빠르게 지나가 금세 잊혔다.
이 곡이 끝난 후에는 그 어느 곡보다도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9. 카푸스틴 - 변주곡
이 곡도 실제로 들으니 더 좋았던 곡이다.
음원으로는 거의 마지막 순서라 집중력이 떨어져서인지 좋지만 큰 인상이 없었는데,
실제 공연장에서는 연주자에게 확 몰입되어서 곡에 푹 빠져 들었다.
카푸스틴의 문 레인보우처럼, 이 곡도 직접 들어본 후에야 곡의 진면목을 알 수 있었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인걸 알기에 중간에 잔잔한 부분은 더 아련하게 느껴졌다.
안돼.... 끝나지 마....
마지막 화려하게 마무리하고 일어서는 손열음 피아니스트의 모습은 누구보다 멋졌다.
10. 앙코르 4곡
모든 프로그램의 연주가 끝나고, 사람들의 손뼉갈채가 이어졌다.
관객들은 앙코르를 위해 정말 끊임없이 박수 쳤다.
물론 나도 쳤다.
계속 불러서 나중에는 조금 미안했지만, 이대로 끝내기에는 우리가 너무 아쉬웠다.....
2시간이 순삭이잖아.
처음에는 2번은 인사하고 들어갔다가, 앙코르가 이어졌다.
지식이 짧아 들을 때는 어떤 곡인지는 몰랐지만, 곡들은 모두 좋았다
3곡은 카푸스틴 곡 같았고, 마지막곡은 스타일이 전혀 달라 다른 작곡가의 곡 같았다.
마지막곡은 특히 아르페지오가 잔잔히 넓게 펼쳐지는데, 내 취향을 저격하는 곡이었다.
(위 감상이 실제 곡 목록을 보고서 들어맞아 신기했다.)
앙코르까지 모든 공연이 끝나고, 인사하는 모습 너무 멋졌다.
긴 연주시간으로 다소 지쳐 보이기도 했으나,
한 분야의 정점을 찍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신감, 당당함, 그리고 멋지게 마무리한 공연에 대한 후련함까지.
마지막까지 완벽한 공연이었다.
앞 자리에 앉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 내가 찍었지만.... 참 잘찍었다.
앞으로 고정지출이 생겼다.
손열음 리사이틀.....
우리 다음 리사이틀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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