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 한 2시간 정도 아무생각 없이 다양한 곡들을 연주했는데, 그 시간동안 들었던 생각들에 대해 정리해본다.
비창 3악장
https://youtu.be/NnyX1kDDOQI
오랜만에 치더라도 익숙한 곡이 주는 편안함. 어릴 적에는 빠르게 치는 게 멋인줄 알고 속도조절도 못했었고, 때문에 셋잇단음표를 치다가 사분음표가 나오면 나도 모르는 새 빨라졌었다. 그러나 크고 나서 연주해보니 셋잇단음표를 내 속도에 맞춰 치려면 사분음표는 그에 맞게 더 천천히 쳐야한다는 걸 느낀다.
피아노를 치다보니 언젠가 속도를 내려면, 언젠가는 이를 위해 천천히 가야한다는 걸 느낀다. 이는 강약의 조절에서도 동일하다. 매번 세게 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되려면 강약 조절이 되어야 한다. 그저 음계를 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곡이 되려면 빠름과 느림, 강함과 약함이 모두 동반되어 함께 어울어져야 한다는 것이 지금의 내게 의미를 준다.
스스로 돌이켜보면 무언가에 쫓기듯 조급해하고 빠르게 살며, 주변 사람들보다 더 돋보이고 인정받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내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지만, 때로는 느린 템포와 스스로 낮추는 일이 좀 더 멋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바흐 인벤션 No.1
https://youtu.be/iE0sJq9xW6k
어릴 적 피아노를 배울 때 바흐의 곡은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는데, 커서 들어보니 일정한 규칙과 깔끔한 음의 전개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오죽하면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 베토벤 이후 두번째로 연주한 곡이 바흐 인벤션이었다.
화성학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해 자세히 설명은 못하지만, 바흐의 음악이 수학적으로? 화성학적으로? 완벽함을 추구하고 있다는 부분만 어디선가 귓동냥으로 들었던 것 같다. 나는 대부분 베토벤, 쇼팽, 라흐마니노프 등의 화려하고 웅장하거나, 섬세하게 기교있는 곡들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21년 세계 피아노의 날에 올라프손의 바흐를 듣게 되었는데, 그때 큰 충격을 받았다. 바흐가 이렇게 멋진 곡이었구나 감상이 들다, 시간이 흐르고 내 스스로 바뀌었다는 걸 깨달은 날이었다. 이후 한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아래의 곡을 추천했었다.
바흐 소나타 No.4
https://youtu.be/h3-rNMhIyuQ
나는 살기 바쁜 날에는 잊고 있다가 방황하고 힘든 시기에 피아노 앞으로 돌아온다. 작년 한 해는 새로운 회사와 일에 적응하느라 바쁘고, 새로운 동료와 프로젝트가 즐거워서 잠시 피아노와 멀리 떨어져있었다. 그러나 올해가 되면서 일도 익숙해지고 회사 상황도 바뀌면서 마음이 어지러워지니 음악이 주는 위로를 찾아 돌아왔다. 한동안은 다시 음악을 연주하고 감상하는 시간을 가질 것 같다. 이런 걸 보면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놓지 않고 계속 치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내 삶 속에 사회의 영역이 아닌 음악의 영역이 따로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된다. 마지막으로 '1년에 한두번이라도 연주하면 남는거지'하면서 큰 돈 들여 피아노를 구매했던 과거의 나를 다시 한번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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